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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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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읽고 


실험적이고 과감한 문학적 시도로 주목받은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1936-1982)의 1967년 작품, <잠자는 남자 Un homme qui dort>입니다. 페렉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작품 <잠자는 남자>는 패러디의 산물로 프루스트, 조이스, 성서의 문체를 차용하고 카프카, 허먼 멜빌의 작품을 차용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패러디'도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죠. 모르는 건 창작으로 여기고 읽습니다.  

 

<잠자는 남자>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에 대한 대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눈을 감자마자,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 _본문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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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혼자다. 너는 홀로인 사람처럼 걷는 법을, 한가로이 산책하는 법을, 주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법을, 바라보지 않고 주시하는 법을 배운다. 너는 투명성을, 부동성을, 존재하지 않기를 배운다. _본문 가운데

 

<잠자는 남자>는 이인칭이 서사를 끌어가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수면 상태의 '너'로 지칭되는 이인칭 주인공은 어느 젊은 남자로 조르주 페렉 자신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작 서른 개 가량의 인쇄활자의 조합으로, 매일같이, 이토록 무수한 말의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너는 또 놀랍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왜 이런 말들을 네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며, 너는 왜 이런 말들을 해독해야 하는 것인가? _본문 가운데

 

조르주 페렉은 프랑스 잠재문학실험실 울리포(OuLiPo)에서 수학자, 문학가들과 교류하며 작품활동을 합니다. 울리포의 정신에 대해 질문의 형식을 빌려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너'는 그런 면에서 조르주 페렉의 작품에 친밀감을 갖는 독자들을 향한 지칭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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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은 저 시작도 끝도 없다. 그것은 그 무엇도 뒤흔들지 못할 확고부동한 상태이며, 어떤 하중이며, 어떤 무기력이리라. (...) 너는 희망하는 법을, 착수하는 법을, 성공하는 법을, 끈질기게 노력하는 법을 잊어버려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을 그냥 가게 놓아둔다. _본문 가운데

 

작품 해설을 보면 이 책은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사회의 무기력과 무기력을 비판하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자는 남자>라는 표제는 프랑스 사회를 향한 무언의 격려와 도전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 속에 페렉이라는 개인도 포함될 테고요. 

 

명확한 스토리라인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줄거리가 분명히 잡히지 않지만 그래서 한 문장 한 단어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작품 해설에서 쓰고 있듯 <잠자는 남자>는 '말의 잔치'입니다.

 

고전을 이용한 이토록 완벽한 패러디물ㅡ개인적으로 카프카를 좋아해서 이 책이 더 가깝게 느껴졌을지도... ㅡ이라니. 조르주 페렉이 패러디 대상이 된 작가들과 작품을 초월한 시각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잠자는 남자> 역시 두고두고 읽을 작품입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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