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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볼테르(Voltaire)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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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Voltaire)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를 읽고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의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Candide, ou L'Optimisme>입니다. 이 작품은 풍자 소설계의 고전으로 당시의 정치, 철학, 종교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18세기 지배계급이었던 로마 가톨릭교회와 종교재판소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담고 있어 당시 큰 파문은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볼테르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서 중요한 화두로 던지고 있는 철학적인 문제ㅡ세상을 낙관주의로 볼 것인가 비관주의로 볼 것인가ㅡ는 우선 차치하고 곳곳에 웃음포인트가 있어 이 책이 과연 '그 무거운 시대'인 18세기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재미있습니다. 재미와 교훈이 함께 있으니 뭐, 완벽한 작품이라 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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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주인공은 순진한이란 뜻의 '캉디드'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입니다. 캉디드는 부유한 트론크 남작의 아름다운 성에서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팡글로스로부터 낙관주의에 관한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그러다 남작의 딸인 퀴네공드와 사랑에 빠지고 그 일로 남작에게 미움을 사 성에서 쫓겨납니다. 

 

남작이 병풍 근처를 지나다 이 '원인과 결과'를 보더니 캉디드를 발로 걷어차고는 바로 성에서 내쫓았다. 존재할 수 있는 성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성에서 일어난 일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_본문 가운데

 

팡글로스가 늘 강조하던 '원인과 결과', '낙관주의'는 이 장면에서부터 풍자의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캉디드는 부조리와 불합리, 폭력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상을 아프게 경험하며 조금씩 각성해나갑니다.

 

"너는 먹을 자격이 없다. 꺼져라. 이놈아. 불쌍한 자식." 설교가가 말했다. 설교가의 아내는 머리통 위로 오물을 한 바가지 쏟아부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귀부인들이 종교에 품은 열정이 이토록 엄청날 수 있단 말인가! _본문 가운데

 

고픈 배를 부여잡고 교회에서 먹을 것을 구걸하던 캉디드에게 설교가는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지 못하자 욕을 하며 내쫓습니다. 이 장면에만 벌써 18세기에 논란이 되었을 법한 여러 소재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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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는 온갖 고난을 당하고 그 과정에서 팡글로스, 퀴네공드, 그 외 여러 인물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재회하기를 반복합니다. 언젠가 거지꼴로 나타나 교수형을 당하고 해부까지 당한 스승 팡글로스에게 지금도 여전히 낙관주의를 따르는지 묻는 캉디드에게 팡글로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네. 왜냐하면 결국 나는 철학자니까 자기가 한 말을 부인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고... 예정된 조화는 충만한 진공과 미세 물질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개념이기 때문이라네." _본문 가운데

 

철학과 철학자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바로 그 철학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장면입니다. 

 

팡글로스와 캉디드는 이번엔 터키의 한 수도승을 찾아가 묻습니다. 이 부분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조우, 더 구체적으로는 동양철학의 상대적인 깊이를 드러내주는 장면으로도 보입니다. 팡글로스는 '존경하는 승려님'이라고 극존대를 하며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한 이치를 묻고, 승려는 그것이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그런 일에 왜 마음을 쓰느냐고 되묻기까지 합니다.

 

"침묵해야 한다." 수도승이 말했다. _본문 가운데

 

일개 피조물인 인간, 수도승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마침내 낙관주의냐 비관주의냐를 초월한 캉디드의 한 마디가 싱겁지만 변치 않을 '진리'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해요." _본문 가운데

 

역시 진정한 배움과 진리는 책에 있지 않고 길에 있었습니다.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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