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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지극히 낮으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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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의 「지극히 낮으신」을 읽고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 1951-2022)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디선가 잔잔한 음악이 들리는 듯합니다. 단아한 글, 보뱅이라는 작가가 점점 좋아지네요.

 

이 책 <지극히 낮으신 Les tres bas>에서는 13세기 기독교의 성인 아시시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의 삶을 보뱅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1992년 출간 이듬해에 프랑스 가톨릭 문학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늘 지극히 낮으신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는 기독교적인 진리가 매 페이지마다 스며 있습니다. 기독교인, 특히 가톨릭교인이라면 더 큰 감동이 있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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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삶을 통해 쌓아 올린 것이 그를 움켜쥐고 질식시키는 순간이 찾아온다. 너는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고 믿었지만, 이제 그 삶이 너를 해체시킨다. (...) 떠나야 한다. 다시 떠나야 한다. 끊임없이. 끝없이 떠나야 한다. 아브라함은 첫 떠남을 시도했다. 그렇게 모든 것과 작별하고 먼 나라를 갈구함으로써... _본문 가운데 

 

크리스티앙 보뱅은 <지극히 낮으신>에서 성경구절도 적절히 인용하는데 그 역시 문학적으로 더 윤색해서 담아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이해하십시오. 듣고 싶은 사람만 들으십시오." 이 말은 지극히 낮으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며, 보뱅이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가복음4:23)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이 남몰래 지향하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이 대상에 대고 말한다. _본문 가운데

 

언젠가 어느 목사님 설교에서 어린 시절 혼자 좋아하던 자매 근처 자리에 앉아 아주 큰 소리로 기도를 한 적이 있다며 그때 그 기도가 과연 주님을 향한 것이냐, 그 자매를 향한 것이냐 스스로를 돌아봤다는 일화를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향하는 대상,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조차 모를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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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당신처럼 돈과 의무와 심각한 과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개, 당나귀 같은 하찮은 무리와 함께하는 데 시간을 몽땅 쏟아붓습니다. _본문 가운데 

 

지극히 낮으신 분의 목소리는 결코 높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낮은 음성, 그 음성은 '가난한'ㅡ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에 결핍이 있는ㅡ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세계는 세상이라는 세계와 구별됩니다. 세상의 소리는 시끄럽고 높아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할 뿐입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당신은 마침내 아이들 무리 뒤에 있는 천사를 알아보았다. 그를 알아보려면 눈을 아주 가늘게, 거의 감다시피 떠야 한다. 몹시 예리한 시각이 되어야 한다. 그는 사진기 렌즈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쓰레기통 위로 몸을 기울인 채 행여 무어라도 찾아낼지 몰라 그 안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다. _본문 가운데 

 

지극히 낮으신 분을 만나려면 세상을 향한 눈을 감고 예리한 시각으로 집중해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화려하지도 뭔가 그럴듯한 지위를 갖지도 않은 그분은 늘 아이들 무리 뒤에 있습니다. 

 

그분을 알아보는 눈이 제겐 있을까요.ㅡ의문문입니다. 

 


2024.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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