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어떤 정신착란」을 읽고
이탈리아 작가이자 페르난두 페소아 작품 연구자인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 1943-2012)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어떤 정신착란>입니다. 제목만 보면 마치 실화를 재구성한 듯 보이지만 이 책은 저자가 페소아가 죽기 전 사흘을 상상하며 풀어낸 전기적 픽션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는 1935년 11월 30일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간경변으로 임종을 맞이합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1935년 11월 28일, 29일, 30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35년 11월 28일, 페소아는 병원으로 향합니다. 자신이 퇴원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 페소아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지인들과 달리 천천히 면도를 하고 옷을 차려입습니다.
페소아는 최근에 재단한 검은색 옷을 입었고, 나비넥타이를 맸고, 안경을 썼다... 펜과 수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_본문 가운데
안경, 펜, 수첩. 이 세가지 소품은 페소아의 전부이기도 한 문학을 상징하듯 그의 마지막 길에도 동행합니다. 마치 의례를 행하듯 정갈한 페소아의 몸짓이 그려집니다.
생의 끝맺음을 준비할 때 우린 무엇을 챙기게 될까요.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페소아가 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사흘 동안 그들은 차례로 페소아를 방문합니다. 연인 오펠리아, 코엘류 박사 등 실존 인물부터 베르나르두 소아르스, 알바루 드 캄푸스 같은 '이명'으로서의 페소아들도 포함됩니다.
책의 부제가 <어떤 정신착란>인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임종 전 환상을 보는 섬망 증세를 픽션으로 풀어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남자이자 여자, 노인, 소녀였고, 대로에 모인 군중이었고, 온화한 부처였고, 나 자신이면서 내가 될 수 있었던 모든 타자였고, 열광과 쇠진함을 알았고... 태양이자 달이었고, 모든 것이었습니다... 내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무수한 삶을 사는 것과 같았어요. 이제 피곤해요. 내 촛불은 소진되었어요. 부탁해요. 내 안경을 주세요. _본문 가운데
심한 근시였던 페소아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안경을 찾습니다. 안토니우 모라의 도움으로 안경을 썼고, 그 순간 그는 영원한 안식을 맞이합니다.
2024.5. 씀.
'[책] 소설 시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고 (2) | 2024.06.02 |
---|---|
심보선 시인의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를 읽고 (0) | 2024.06.01 |
에밀 시오랑(Emil Cioran)의 「태어났음의 불편함」을 읽고 (0) | 2024.05.30 |
C.S.루이스의 「책 읽는 삶 The Reading Life」을 읽고 (2) | 2024.05.29 |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느끼고 아는 존재」를 읽고 (0) | 2024.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