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소망 없는 불행 Wunschloses Ungluck」을 읽고
이보다 더 비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소망 없는 불행'. 대체 무슨 사연이 담긴 작품일지 책을 펼치기 전부터 긴장됩니다.
1966년 발표한 희곡 작품 <관객 모독>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의 산문집 <소망 없는 불행>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페터 한트케는 마침내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 <소망 없는 불행 Wunschloses Ungluck>은 두 개의 산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에 대해 쓴 「소망 없는 불행」과 첫 번째 부인과 결별 후 딸을 혼자 키운 경험을 쓴 「아이 이야기」, 이렇게 두 편입니다.
「소망 없는 불행」은 어머니가 5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의 지난 삶을 회상하며 쓴 작품으로 장례식 후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얼이 나가버리기 전에 당장 쓰자고 자신을 다그친 결과입니다. 읽다 보면 작품 곳곳에 아픔과 고통을 억누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전처럼 고통 없이 잘 지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 일상, 가족을 잃어버리고 홀로 남겨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어릴 적부터 강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원하는 만큼 공부하지 못합니다. 말 상대가 되지 못하는 남편, 더더욱 말 상대가 되지 못하는 아이들과 어렵게 살면서 인색하게ㅡ좋은 표현으론 알뜰하게ㅡ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될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좋아하고, 배움을 갈망했지만 늘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살았으며 원하는만큼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가족들이 배불리 먹고 난 후에야 남은 빵부스러기를 '애교 있게' 집어먹던 어머니를 페터 한트케는 고통스럽게 회상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어머니는 자의식을 찾아갑니다.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여자'가 되어갔습니다. 책을 좋아한 어머니는 소설 속 이야기를 자신의 삶의 여정과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팔라다, 크누트 함순,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를 읽었고 토마스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도 읽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무덤 속까지 가져갔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 듣고난 후 책의 끝부분에 적힌 '그녀는 사람을 좋아했다.'라는 한 문장을 만나니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집니다.
여러 면에서 「소망 없는 불행」은 페미니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 페터 한트케는 '언젠가 이 모든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쓰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남습니다. 아픔을 꺼내 글로 쓴다는건 두려운 일이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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