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빌러비드 Beloved」를 읽고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beloved)'라 부르리라." (로마서9:25)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2019)의 소설 <빌러비드 Beloved>입니다. 표제는 성경 로마서 9장 25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해당 성경구절은 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빌러비드>는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어린 딸을 죽인 흑인 여성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로 흑인 노예문제, 특히 여성 노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과 철학적 깊이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책의 뒷부분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쓰인 문장을 먼저 옮겨봅니다.
어떻게든 잊으려는 초인적인 노력이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기억에 의해 위협받기도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노예 상태를 개인적 경험으로 표현하려면, 언어는 길을 벗어나야만 한다. _「작가의 말」 가운데
전체 3부로 구성된 <빌러비드>는 각각의 첫 문장이 모두 '124번지'에 관한 묘사입니다.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그 집 여자들은 그걸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_「제1부」 가운데
「제2부」의 첫 문장은 "124번지는 시끄러웠다.", 「제3부」의 첫 문장은 "124번지는 조용했다."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토니 모리슨의 광활한 스펙트럼은 아이러니하게도 124번지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독자는 소설의 끝부분에서 깨닫게 됩니다.
꿈인 듯 환상인 듯, 아니면 과거의 회상인듯한 세서의 어린 딸 덴버의 독백입니다. 엄마가 이전에 딸 하나를 죽였다는 것을 아는 덴버는 엄마를 무서워합니다.
엄마의 예쁜 두 눈이 나를 마치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죠. 딱히 사악한 눈빛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발견했는데 그게 나여서 미안하다는 듯이. 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많이 아프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듯이. 이게 바로 어른들이 하는 일이라고, _「제2부」 가운데
어느 날 찾아온 의문의 여성 <빌러비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자신을 파괴하는 두려움이 외부를 변화시키겠다는 용기로 승화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 오늘날에는 모든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책 첫 페이지의 헌정 문구가 그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습니다.
'육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
<빌러비드>는 전 세계 80억을 향한 토니 모리슨의 간절한 전언과도 같습니다.
2024.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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