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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힘겨운 사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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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힘겨운 사랑 Gli Amori Difficili」을 읽고


사랑의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을 극도로 섬세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탈리아의 언론인이자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1923-1985)의 단편집 <힘겨운 사랑 Gil Amori Difficili>입니다. 이 책의 1부 '힘겨운 사랑'에는 열세 편의 단편이, 2부 '힘겨운 삶'에는 두 편의 단편이 포함돼 있는데 대부분 1949년에서 1958년 사이에 쓰였습니다.  

 

1950년대 이탈로 칼비노는 <반쪼가리 자작>같이 동화적 환상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썼지만 <힘겨운 사랑>처럼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작품들도 집필했습니다. 두 스타일 모두 흥미롭지만 역시 후자의 경우가 익숙해서 읽기엔 수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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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힘겨운 사랑'은 모험이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군인, 도둑, 해수욕객, 스키어, 여행자, 운전자 등의 힘겨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힘겨운 사랑>의 전체 열다섯 편의 단편 중 「어느 여행자의 모험」에 특히 감정이입하게 되는데 주인공 페데리코의 모습에서 '여행자ㅡ약간의 결벽증과 강박증을 가진' 특유의 심리가 아주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사는 페데리코는 로마에 사는 연인 친치아를 만나러 장거리 기차여행을 떠납니다.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시간에도 그는 항상 열차 시간표를 생각했다. 마침내 모든 임무를 서둘러 처리하고 여행 가방을 들고 역으로 걸어가다 보면 그때부터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면서도 평온함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_「어느 여행자의 모험」 가운데

 

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늘 앞서서 조바심내는 페데리코는 외모도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허튼소리는 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일 듯합니다. 

 

 

2등석을 예매한 페데리코는 자기 칸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길 바라며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갑니다. 창문에 커튼을 쳐놓기도 하고 맞은편 좌석에 짐을 어지럽게 올려두기도 합니다. 혹여 누군가 그 칸에 들어오면 그가 페데리코처럼 로마까지 가는 장거리 승객이길, 그리고 일행이 없길 바랍니다.  

 

"빈자리지요?"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페데리코는 벌써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을 했다. 누워서 여행을 하고 싶다면 한 칸에 둘이 있는 게 더 좋았다. 한 사람이 이쪽에 다른 사람이 반대쪽에 누워있으면 아무도 그들을 방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_「어느 여행자의 모험」

 

누군가와 소통하고 상대방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는 등의 것은 페데리코에게 무가치한 일입니다. 그저 로마까지 편안하게 방해받지 않으며 혼자 2등석 칸을 차지한 채 가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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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의 그 남자가 앉은 채 잠이 들고 페데리코는 그 틈을 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신발도 슬리퍼로 갈아신습니다. 구두는 좌석 아래 감추고 바지는 화장실에서 갈아입습니다. 타인에게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철저한 계산에 따른 행동입니다. 

 

페데리코는 앉은 자세로 잠자는 사람들을 질투조차 할 수 없는 생소한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기차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치밀한 절차와 세심한 의식을 전제로 하는데, 바로 그게 힘겨운 여행의 묘미가 되었다. _「어느 여행자의 모험」

 

힘겨운 여행의 묘미, 페데리코는 은근히 <힘겨운 사랑>을 즐기기까지 합니다. 

 

 

페데리코는 생각을 멈추지 않고 묘안을 굴려보지만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단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페데리코가 있는 2등석 칸에 드나들고 단체 여행을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군인, 비에 젖어 꿉꿉한 냄새를 풍기는 남자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칩니다.

 

남자의 외투에서 비에 젖은 냄새가 나서 페데리코는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남긴 거라고는 비 냄새가 고인 어둠과 무거운 호흡뿐이었다. _「어느 여행자의 모험」

 

고단하고 피곤한 여행입니다.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페데리코는 세면도구를 챙겨 단장을 하고 기차에서 생기있게 내립니다. 마치 기차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행자 페데리코의 <힘겨운 사랑>은 그렇게 이어집니다. 


2024.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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