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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의 「60개의 이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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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부차티(Dino Buzzati)의 「60개의 이야기 Sessanta Racconti」를 읽고


이탈리아 환상문학의 거장 디노 부차티(Dino Buzzati, 1906-1972)의 소설집 <60개의 이야기 Sessanta Racconti>입니다. 수록된 단편 60편 모두 어딘가 신비롭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로 '어? 이런 작가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습니다.

 

<60개의 이야기>는 1958년 발표한 작품집인데 당시 단편으로는 이례적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 절정에 오릅니다. 스스로를 "기자와 작가를 취미로 하는 화가"라고 소개하는 디노 부차티는 평생 기자로 살며 시, 소설, 희곡을 쓰고 화가, 만화가, 무대디자이너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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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된 60편의 단편 가운데 특히 잔상이 남는 작품으로 「21.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를 꼽을 수 있는데 지금껏 읽은 단편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간 정차역 없이 10시간을 달려 종착역으로 가는 고속열차 승객인 주인공 화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주인공이 탄 고속열차는 창밖 풍경도 빠르게 지나갑니다. 스치듯 눈에 들어온 누군가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건널목의 여자, 낮은 담 위에서 뭔가를 외치는 청년, 질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조각난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흩어집니다.  

 

기차는 빠르게 달렸고, 시골 마을은 온통 혼란한 상황에 휩쓸려 있었다. 기차에 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_「21.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가운데

 

 

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기차와 반대편인 남쪽으로 몰려갑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 이동 대열은 점점 커지고 촘촘해집니다. 기차는 멈출줄 모르고 북쪽을 향해 빠르게 달리고 화자를 포함한 열차 승객들은 이유를 모른 채 불안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 즉 남쪽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빠르게 달려가는 그곳에 있는 위험을 피해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전쟁, 반란, 전염병, 화염, 우리는 무엇을 향해 돌진하고 있을까?

 

...아무도 말이 없었다. _「21.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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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세기 중반에 값비싼 고속열차를 탄 승객들, '막대한 부, 편안한 삶, 모험가들, 멋진 가죽가방, 유명인'의 상징인 고급 고속열차의 승객들은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품위와 애처로운 자존심을 지키느라 아무도 반발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 기차는 인생과 얼마나 닮았는지! _「21.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다」 가운데

 

체면을 차리느라 자신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옆자리 승객에게 묻지 조차 않는, 우아하고 근엄한 승객들은 '무슨 일인가 벌어진' 북쪽으로 하릴없이 끌려갑니다.

 

대체 그곳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두근두근.


2024.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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