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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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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의 「명랑한 은둔자 The Merry Recluse」를 읽고


스스로를 '명랑한 은둔자'라고 멋지게 정의내리는 작가 캐럴라인 냅(Caroline Knapp, 1960)의 유고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자 The Merry Recluse>입니다. 이 책은 42세에 세상을 떠난 냅의 삶 전반을 담아낸 작품으로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괴로움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에서의 삶을 우아하고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캐럴라인 냅은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면서도 가족과 친구, 반려견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중독, 결핍, 상실, 슬픔, 성장, 고립, 고독 같은 키워드로 묘사되는 저자의 삶은 자신의 실수와 결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명랑한 은둔자>라는 제목을 달고 말이죠.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그러나 인지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캐럴라인 냅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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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다시 놓아주지 않는 어떤 마음 상태다. ...어느새 고립된다. ...어느새 외롭다. ...어느새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갇힌다.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은 무척 가늘고 모호하며,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다.

 

고독이 간절해서 한동안 혼자 지냈을 뿐인데 서서히 고립되는 상태, 이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당황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캐럴라인 냅이 쓴 '음흉하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적확합니다.

 

혼자를 즐기는 냅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가장 잘 소개하고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한 문장, '명랑한 은둔자'라는 표현이 어느날 불식간에 떠오릅니다. 이 근사한 순간을 캐럴라인 냅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독자들에게도 자랑하듯 되묻습니다. 멋지지 않냐고.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이 말을 다시 들어보라. 산뜻하고 멋지게 들리지 않는가?

 

멋져요! 훔쳐다 쓰고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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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입니다. 냅에게는 반려견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이렇게 묻습니다.

 

"개가 생긴 뒤로 네 세계가 좁아진 거야?"

 

나는 질문을 곱씹다가 대답했다. "어떤 면에서는 좁아졌지. 하지만 어떤 면에선 넓어졌어. 주고받았어." 이 교환 관계는 실체적이기도 하고 감정적이기도 하다. 자기 인생에 다른 종의 생물을 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물론이죠. 알고 말고요.

 

냅은 고독을 즐기고 고립을 종종 자처하는 성향 덕분에 주변의 오해도 적잖이 사게 됩니다. 이웃들은 그녀를 향해 '고상한 척하고 도도하게 군다'라고 수군댑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 해외에서는 주로 동북아시아인들이 억울할 정도로 쉽게 받는 오해입니다. 여기에 더해 '화가 난 듯하다'는 부록이고요.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구 문화권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 그러니까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할 필요도 없고 부모의 건강을 염려할 필요도 없는 시기, 대략 20대 중반에서 30대 중후반의 시기가 지나면 갖게 되는 심리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적 있는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남으면 어쩌지? 아니면 이런 생각.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실 줄이나 아나?

 

너무 솔직해서 피식 웃음이 날 정도입니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갖는 솔직한 심경입니다.

 

<명랑한 은둔자>를 옮긴이의 말처럼 캐럴라인 냅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래서 40대, 50대, 60대의 삶에 대해서도 이렇게 예고편처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24.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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