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욘 포세(Jon Olav Fosse)의 「3부작」을 읽고

728x90
반응형


욘 포세(Jon Olav Fosse)의 「3부작 Trilogien」을 읽고


<아침 그리고 저녁 Morgan og Kveld>이라는 소설로 욘 포세(Jon Olav Fosse, 1959)를 처음 접하고 이 책 <3부작 Trilogien>이 두 번째입니다. 페이지를 한 장 넘기자마자 '어?!' 두 작품이 하나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인 줄 착각할 뻔했습니다. 마침표가 거의 없는, 산문인 듯 시인 듯 노래가사인 듯 리듬감 있는 욘 포세 특유의 문체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분위기 덕분입니다.

 

2014년에 출간된 <3부작 Trilogien>은 2007년 <잠 못 드는 사람들 Andvake>, 2012년 <올라브의 꿈 Olavs draumar>, 2014년 <해질 무렵 Kveldsvævd>, 세 편의 연작을 1부, 2부, 3부로 나눠 하나로 모은 작품집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아침 그리고 저녁>의 등장인물들처럼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가난하고 비루한 인생을 쓸쓸하게 살아갑니다. 욘 포세는 이 연작 소설에서 가족의 탄생과 소멸, 예술과 운명, 죄와 양심, 그리고 거룩한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728x90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에서 열일곱 동갑내기 아슬레와 곧 출산을 앞둔 알리다는 노르웨이 벼리빈(Bergen 베르겐의 옛 이름)에서 머물 곳을 찾아다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든 꼭 방을 빌려야 할 텐데, 이렇게 돌아다닐 수만은 없는데, 어째서 아무도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지 않는 것인지, 곧 출산을 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것을 알고 그러는 것인지, _「1부 잠 못 드는 사람들」 가운데

 

 

아슬레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습니다. 아버지 시그발은 연주자의 운명은 슬픔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 속에서 그 슬픔이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에 연주가 필요하고, 연주를 해야만 한다고 아슬레에게 일러줍니다.

 

연주자의 운명은 비참하지,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 늘 버려, 늘 포기해야 해, 그가 말했다 / 네, 아슬레가 말했다 / 그래, 떠나는 거다,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아버지 시그발이 말했다 _「1부 잠 못 드는 사람들」 가운데

 

알리다는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 이름은 시그발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분열된 이야기가 감정을 덜어낸 만연체 문장과 어우러져 의식의 흐름대로 맥락 없이 이어집니다. 

 

반응형

 

「2부 올라브의 꿈」에서 아슬레는 올라브라는 이름으로 반지를 사기 위해 도시를 배회합니다. 

 

여기 내가, 나처럼 비참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사러 가는 길이니까, _「2부 올라브의 꿈」 가운데

 

2부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치 기독교의 순교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소설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도 떠오릅니다. 

 

 

너 거기 있구나, 우리 착한 아기,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 여기 반짝, 저기 반짝, 겁내지 말렴, 우리 아기, 소중한 아기, 그러자 아슬레는 푸르게 반짝이는 피오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리다가 잘자라 우리 아기, 너는 그저 떠오르고, 너는 그저 살아가고, 너는 그저 연주하렴, 우리 착한 아기, _「2부 올라브의 꿈」 가운데

 

욘 포세만이 할 수 있는 죽음의 순간에 대한 묘사입니다. 「3부 해질 무렵」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소멸의 순간에 대한 아름답고 시적인 표현이 마치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 사람의 의식을 글로 펼쳐놓은 듯합니다.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욘 포세는 노르웨이 소설의 정점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015년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심사위원단은 '형태적 세련됨, 이야기에 대한 탐구적 접근'이라는 표현으로 <3부작>을 설명합니다. 스토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조금은 낯선 형식의 작품이지만 넘치도록 충만한 영감을 지닌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2024.3.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