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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아연 소년들 Zynky Boys」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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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의 「아연 소년들 Zynky Boys」을 읽고


전쟁을 승자와 패자의 시각이 아니라 약자들, 그러니까 아이들과 여성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1948)가 1992년 출간한 책 <아연 소년들 Zinky Boys>입니다.

 

저자는 1985년 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후 극심한 후유증으로 더 이상 전쟁에 관한 글은 쓰지 않기로 합니다. 그러나 10년간 이어진 소련-아프간 전쟁(Soviet-Afghan War, 1979.12-1989.2)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시 이 작품을 써냅니다. 참전한 소년병, 그들의 어머니들과 진행한 500건의 인터뷰를 모은 글로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작가 특유의 다큐문학 장르를 다시 선보입니다.

 

이 작품으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93년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국가의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참전군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인데 전 세계 작가, 독자,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재판은 종결됩니다. 이후 저자는 2015년 "다성적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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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전쟁의 참혹함과 한편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그것과 동떨어진 그들의 말에 덜컥 덜컥 멈춰 서게 됩니다. 책을 여러 번 덮었다 다시 열었다를 반복합니다. 

 

병사 한 명과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총을 쏘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두 가지 선택 앞에서 갈등하며 괴로웠던 심경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병사에게 그런 갈등은 없어 보였다.

 

 

이 어린 청년들에게 윤리의 경계는 군대의 명령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결정된다. 사실 이들이 우리들보다 더 조심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와 이들 사이의 거리가 드러난다. 

 

그들은 군인들에겐 전쟁의 정당성은 중요하지 않으며 지시를 받아 싸우러 가는 곳이면 거기가 바로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사상을 용납하지 않는 곳, 군대는, 전쟁터는 그런 곳입니다. 

 

참전했던 군인들은 모두가 두동강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일부는 오히려 그곳에서의 생활이 더 좋았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사람은 전쟁터에서 변하는 게 아니에요. 전쟁 후에 변하죠. 거기서 그 모든 걸 목격한 바로 그 눈으로 여기 일들을 볼 때 사람은 변해요. 여전히 그곳에 있을 때의 시선과 이곳의 시선, 바로 여기서 부서지기 시작해요. 

 

 

한 병사는 전쟁에서 깨달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 세상의 악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자연은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서 조금씩은 폐쇄적이에요. 누구도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죠. 모두 자기만의 환멸을 겪었어요... _민간인 여성 복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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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한 어린 병사들의 유해는 차가운 아연관에 담겨 유족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아연 소년들 Zynky Boys>인 이유인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그것을 언급하며 교육한다는 인터뷰이도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문학이나 철학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어린 병사들에게는 절대 권력을 가진 '중사'들의 명령만 존재할 뿐입니다.  

 

너희가 옛날에 우리 같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아연관에 담겨 집으로 돌아오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에 대한 재판 일지가 수록돼있습니다.

 

고소장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몰국제주의용사들 어머니모임에서 제출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냉혹한 살인로봇, 약탈자, 마약중독자, 강간범 등으로 묘사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민스크 법원으로 보내온 항의서신과 탄원서, 의견서도 같이 실려있습니다.

 

최종 선고 재판에서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진술이 인상적인데 그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시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쓰고 기록합니다. 살아 있는 목소리, 살아 있는 운명들을요. 역사가 되기 전의 목소리와 운명은 아직 누군가의 고통이고, 누군가의 비명이고, 누군가의 희생이거나 범죄입니다.

 

매번 새로운 책을 내기에 앞서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 기운이 우주에 미칠 정도로 악의 규모가 커져버린 이때, 세상에 악을 확장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악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나가지?' 저에겐 큰 짐이며, 이것이 저의 운명입니다.

 

책 한권이 출판되면 그때부터 책은 스스로의 운명을 갖게 된다는 말을 누군가 한 적이 있습니다. <아연 소년들>은 1990년대 초 시대가 던진 모진 운명을 무사히 헤쳐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편히 앉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2024.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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