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ㅣ로버트 뉴턴 펙 Robert Newton Peck
미국의 청소년 문학 작가 로버트 뉴턴 펙(Robert Newton Peck, 1928-2020)의 반 자전적 소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A Day No Pigs Would Die>입니다. 1972년 출간된 이 작품은 로버트 펙이 44세에 쓴 첫 번째 소설로 약 3주에 걸쳐 쓰였습니다. 11세 때부터 이 책을 쓰고 싶었다는 로버트 펙이 그 바람을 실행하는 데 33년이 걸린 셈입니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의 주인공 12살 로버트 펙은 학교를 빼먹은 어느날 이웃집 소가 송아지 낳는 것을 우연히 돕게 되고, 목에 생긴 혹까지 제거해 줍니다. 그 과정에 팔이 물리는 부상을 입지만 소 주인 태너아저씨로부터 새끼돼지 '핑키'를 선물 받습니다. 핑키는 주인공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로버트의 아버지 해이븐 펙은 돼지 도살하는 일을 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임무', 해야할 일이기에 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매일 성실하게 일하지만 가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로버트는 돼지 도살업에 관해 아버지와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야 해. 내 임무는 돼지를 잡는 거야. 그리고 그림 속의 일부가 될 수 있어서 아주 고맙게 생각한단다." / "무슨 그림요?" / "버몬트의 그림."
로버트의 가족은 신실한 셰이커교(Shakers, 기독교의 분파)도입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형편과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인 로버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런 아버지는 가끔 다가오는 운명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말을 합니다.
"나는 노을이 너무 좋아요. 아빠는 어때요?" 내가 묻자 아빠가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은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 // "돼지 잡을 때 가죽 행주치마를 입을 텐데, 왜 그렇게 더러워졌어요?" / "어차피 죽는다는 건 더러운 일이야.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로버트는 일곱남매 중 막내, 누나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입니다. 곧 다가올 운명을 예견한 아버지는 로버트에게 유언처럼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병원에 가보길 권하는 로버트에게 아버지는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이번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 몸이 이상한 것 같구나." / "병원에 가 보셨나요?" / "그럴 필요는 없어. 모든 건 끝이 있는 법이야."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고 담담히 준비한다는 것, 로버트의 아버지는 내면이 무척이나 강인한 분입니다.
로버트의 유일한 친구인 '핑크'는 불행히도 새끼를 낳지 못하고, 먹거리가 떨어진 어느 겨울날 가족들은 핑키를 잡아야할 상황에 처합니다. 아빠를 따라 돼지우리로 간 로버트는 핑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버지를 도와 핑키를 잡습니다.
'핑키, 이해해 줘.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아빠가 올가을에 사슴 한 마리만 잡았어도, 내가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컸더라도, 이런 일은 결코 없을 텐데....'
로버트는 목 놓아 울고, 아버지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입니다. 그리고 '핑키'를 죽인 아빠의 피 묻은 손, 그 손을 잡아 입을 맞추며 아빠를 향한 복잡한 마음을 달래 봅니다. 가난은 어린 로버트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이듬해 5월, 아버지는 주무시던 중 숨을 거두고 열세살 로버트는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릅니다. 그날 아빠의 동료들이 모두 장례식장에 모였고, 때문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이 됩니다. 로버트는 아버지가 남긴 작업도구들을 살펴보던 중 발견한 수첩에서 자신의 이름을 수없이 연습한 흔적을 발견합니다.
종이를 펼쳐드니 아빠가 이름 쓰기 연습을 한 흔적이 보였다. 수많은 '헤븐 펙' 글자.
배우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땅을 갖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대로 '버몬트 그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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