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ㅣ에릭 로메르

728x90
반응형


[책]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Six Contes Morauxㅣ에릭 로메르


프랑스의 영화운동 누벨바그의 거장, 영화감독이자 작가 에릭 로메르(Eric Rohmer, 1920-2010)의 소설집 <여섯 개의 도덕 이야기 Six Contes Moraux>입니다. 1962년부터 1972년까지 에릭 로메르가 발표한 6편의 단편영화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콩트(Conte, 짧은 이야기)'라는 문학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동일한 주제로 여섯 가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프랑스어에서 'Moraux(moral)'은 도덕적인, 정신에 관한 것을 뜻하는 형용사입니다. 중의적인 이 단어가 책의 제목으로 쓰인 이유 역시 이 두 가지 의미를 포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 속 주인공 남자들이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우지만 결국 '도덕적으로' 본래 자신이 사랑한 연인에게 되돌아 오니까 말이죠.

 

728x90

 

 

에릭 로메르의 영화 등장인물들은 긴 대화를 자주 하고 복잡한 인간관계나 심리묘사에 집중합니다. 로메르 자신도 '인물의 행동보다 내면을 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문학과 철학에 대해 논하는 것도 즐깁니다. 이러한 그의 영화 스타일에 대해 지루하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녀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내가 어떤 인상을 줄 수 있을까.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 말고 아무 말이나 하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좀 붙잡고 보자. // 내 선택은 일단 '도덕적인' 것이었다. 실비를 다시 만나고도 빵집 아가씨에게 치근대는 것은 악덕보다 못한 짓. _「몽소 빵집 아가씨」 가운데

 

첫 번째 단편 <몽소 빵집 아가씨>에서는 빵집 아가씨에게 치근대는 남자가 나옵니다. 모든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로메르의 섬세한 내면 묘사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잘생긴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을 '못생겼다'고 여긴 주인공에게 복수를 선사한 여자의 이야기 <쉬잔의 이력>입니다. 그녀에 대한 '동정' 형태의 애정을 느끼던 주인공의 내면은 꽤나 복잡합니다. 

 

야심한 시각에 내 방에 여자가 와 있으니, 아무리 그녀가 '못생겼다'고 해도 마음이 흔들렸다. 얼마 전부터 쉬잔이 내게 보여준 마음 씀씀이, 굳이 방에 올라오겠다고 억지 쓰던 모습... _「쉬잔의 이력」 가운데

 

반응형

 

 

제게 깊은 찔림을 주는 대화가 <수집가>에 나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스스로에 대한 위로인 듯, 자조인 듯, 겸손인 듯, 변명인 듯, 묘한 답변입니다. 

 

"응, 하지만 자기 본성을 따라가는 게 본성을 억누르는 것보다 피곤해. 게다가 네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할 순 없지. 책을 읽잖아." / "책을 안 읽으면 생각을 하게 되잖아. 독서는 그 책의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나의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읽는 거야." _「수집가」 가운데 

 

네 맞아요, 그래서 독서가 취미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하고나면 대부분의 이성이 다 '괜찮게 보인다'라는 것, <오후의 연정>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그러함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취향을 확신할 수도 없고, 그래서 까다롭게 이성을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갑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모든 여자가 예쁘다. 그 여자들의 삶이 궁금하다. 만약 3년 전에 내가 저 여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_「오후의 연정」 가운데

 

책을 읽고나니 역시나 원작 영화들이 궁금해집니다... 만, 찾아볼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24.1.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