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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ㅣ유제프 차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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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어느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 강의ㅣ유제프 차프스키


자꾸만 모든 상황이 어떤 한 방향을 가리킬 때가 있습니다. 요즘 제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꼭 그렇습니다. 도서관 서가에서 책을 고를 때마다 위풍당당하게 꽂힌 압도적인 분량의 그 책이 늘 부담을 줍니다.

 

이 책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역시 '그 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유제프 차프스키(Jozef Maria Franciszek Hutten-Czapski, 1896-1993)로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입니다. 유제프 차프스키는 폴란드 귀족가문 자제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장교로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스타로벨스크 수용소를 거쳐 그랴조베츠 수용소로 이감됩니다.

 

바로 이곳 그랴조베츠 수용소에서 유제프 차프스키는 1940년부터 1941년까지 같이 수감된 폴란드인 포로들을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를 주제로 하는 강의를 합니다. 이유는 수용소 생활 중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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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에는 유제프 차프스키의 강의 노트 원문이 수록돼 있는데 그가 이 강의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기 전 이 책을 만난 게 행운입니다. 덕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호기심이 책의 분량이 주는 부담을 넘어섰습니다. 

 

 

프루스트는 1890년부터 1900년까지 약 10년간 자신의 문학과 세계관을 수련하고, 1905년경부터 1923년에 걸쳐 모든 작품을 창조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 그 시기에 순차적으로 출간됩니다.

 

유제프 차프스키는 이 책의 모든 것에 대해 경탄함과 동시에, 이 책의 만만찮은 분량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언급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롭고 정밀한 심리 분석의 기구를, 새로운 시의 세계를, 그리고 보석 같은 문학의 형태를 이 작품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촘촘히 쓰인 수천 페이지를 어떻게 소화해야 하고, 또 시간은 어떻게 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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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프 차프스키는 위대한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작가의 실제 삶과 관련돼 있게 마련이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 완벽한 사례라고 말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루스트의 삶 자체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을 '나'로 표현하고 있어서 모든 페이지가 마치 프루스트의 고백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프루스트는 사교계의 젊은이와는 전혀 다른 인물 같았다고 말한다. 그 미소나 태도에 이상하리만치 성숙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파르그(Leon-Paul Fargue, 1876-1947)는 그에게서 어떤 '거리 두기'와 같은 초연함, 확신감 등을 느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것은 그가 목숨을 다해 마치 순교자처럼 집필에 매달렸기 때문인데 의사인 동생이 억지로 치료를 하고자 했으나 그것마저 거부하고 작품에만 집중합니다. 결국 죽음에 초연하게 된 프루스트는 무리한 탓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던 중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바람대로 글을 쓰며 '순교'한 것입니다. 

 

프루스트는 작품 집필에 들어가면 작은 소리도 참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벽 전체를 코르크로 덮은 방의 피아노 바로 옆에 붙여놓은 침대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어느 편지에 썼듯 그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순교" 같았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침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한 위대한 작가와 그 작품에 바치는 경의의 고백이자 문학을 통한 영혼의 구원이 가능함을 보여준 숭고한 작업이라는 평입니다. 유제프 차프스키는 이후 1941년 8월 수용소에서 풀려나지만 다시 재입대하고 부대 내에서 문화 활동도 이어갑니다. 

 

아래는 이 책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의 마지막 장에 실린 '옮긴이의 말'입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재, 과거, 미래의 삼분법을 취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형의 시간 속으로만 주체를 함몰시키는 위력을 발휘하므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그나마 잊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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