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생의 실루엣ㅣ미야모토 테루

728x90
반응형


[책] 생의 실루엣ㅣ미야모토 테루, 열네편의 에세이집


일본의 작가 미야모토 테루(Miyamoto Teru, 1947)의 에세이집 <생의 실루엣>입니다. 며칠전 저자의 <환상의 빛>을 읽고 문체에 반해 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일본 교토의 요릿집에서 1년에 2번, 10년간 발행한 <소유>라는 잡지에 미야모토 테루가 연재한 에세이 가운데 열네편이 수록돼있습니다. 

 

에세이의 소재는 미야모토 테루의 문체만큼이나 담백하고 단정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형, 자신의 질병, 과거 살았던 집, 여행중 만난 남매, 경마회에서 만난 사람 등 그냥 지나쳐버려도 이상할 게 없을만큼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소소한 것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게 소설가의 자질인 듯합니다.

 

728x90

 

어머니의 아들, 다시 말해 어머니와 그의 전 남편 사이에 난 아들, 자신의 '형'에 대한 글이 첫 번째로 수록돼있습니다. 제목은 「형」입니다. 우연히 방문한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성, 짐작되는 나이대, 호리호리한 체격에 큰 키의 남자를 보고 자신의 '형'임을 확신합니다. 

 

나는 그 뒷모습에 대고 뭐라고 한마디 말을 걸고 싶은 급작스러운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큰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ㅇㅇ짱. 그리고 그 사람이 뒤 돌아본 것과 동시에 뛰어서 달아났다. _「형」 가운데  

 

짝사랑하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돌아보면 달아나는, 그와 비슷한 감정이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미야모토 테루는 어느날 들른 서점에서 문예지를 뽑아 읽고 자신이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기로 합니다. 그 사연이 「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것」에 나옵니다.

 

20대 중반부터 공황장애를 앓은 미야모토 테루에게 전철 타는 것은 늘 고역입니다. 소설가가 되면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되고 북적이는 곳을 다닐 필요가 없으니 그가 생계로 삼을 일은 오직 소설쓰는 것 뿐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작은 쉽지 않습니다.

 

나는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만 매진했다. 일은 그리 간단히 흘러가지 않았다. 써도 써도 신인상 1차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다. 집에 있어도 공황발작은 덮쳐온다. 실업급여도 앞으로 석달이면 끝난다. 수입은 한 푼도 없다. _「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것」 가운데

  

유일한 희망은 이루어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돈은 없고, 몸도 아프고, 지옥 밑바닥과 같은 공포가 이어집니다. 

 

반응형

 

미야모토 테루가 10살 때 1년간 살았다는 「터널 연립주택」 이야기에는 한국 역사의 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1950년대 중반, 터널 연립주택에서는 한국계와 북한계 주민들간 싸움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곳이 적어도 중산층 거주지가 아닌 건 분명해보입니다. 

 

터널 연립주택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리어카를 끌며 라멘을 파는 애가 여럿 딸린 남자. 야시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청년, 골목에서 점을 치는 자칭 '시인' 여자. 그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각각의 집안에서 떠돌던 냄새까지 되살아난다. _「터널 연립주택」 가운데

   

 

터널 연립주택을 떠올리면 숙연한 기분이 든다는 미야모토 테루는 그곳에서의 1년이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경험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70억 개의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미야모토 테루의 말이 심오하게 들립니다. 

 

아마도 나는 터널 연립주택에 맡겨진 고작 1년 사이에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짐작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_「터널 연립주택」 가운데


2024.1. 씀.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