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단 하나의 눈송이ㅣ사이토 마리코, 일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시집
일본의 시인이자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Mariko Saito, 1960)의 <단 하나의 눈송이>입니다.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일본인이 10여 년 간 배운 한국어로 쓴 시집입니다. 한국어가 유창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눈으로 본 것, 마음에 떠오른 것을 말하고 싶어도 제대로 못했던 답답함이 시를 쓰게 했다"라는 시인의 말은 겸양의 표현임과 동시에 외국어를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문학적 깊이는 차치하고 외국어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시를 쓰는게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시집 마지막 부분에 실린 '시인의 말'입니다. 서울로 유학 온 사이토 마리코는 약 1년 2개월의 유학기간에 50여편의 시를 씁니다. 시작활동이 자신의 노력이 아닌 어떠한 이끌림에 의한 것이었다고 재차 겸손한 고백을 내놓습니다.
서울에서 내가 한 것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무언가를 보는 일, 그것뿐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가 "나왔"고, 또 그러기 위해서 어떤 힘도 필요하지 않았다. _'시인의 말' 가운데
일본어에는 한국어 '눈송이'에 해당하는 낱말이 없다고 합니다. 사이토 마리코는 '눈송이'라는 말을 그저 사용하고 싶어서 이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쓴 의도조차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쓰고 싶은 낱말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계기로 술술 시가 쓰였다는데 그동안 시인 안에 담긴 글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_「눈보라」 가운데
윤동주 시인에 관한 시 「비 오는 날의 인사」가 인상적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나이를 넘어 있었습니다. / 그것을 잊은 채로 당신의 나라에 와버렸고 / 잊은 채로 당신의 학교에까지 와버렸습니다 / 당신의 나이를 넘은 제 삶을 / 여기에 옮긴 것은 옳았던 것인지 _「비 오는 날의 인사」 가운데
연세대 어학당에서 유학한 사이토 마리코가 윤동주 시비를 보고 쓴 시인데 일본의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수필집에 실린 문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했다. 그런 시대가 있었다." _이바라키 노리코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는 일본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는 말을 뒤에 덧붙이고 있습니다.
2024.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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