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ㅣ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전혀 모른다.
이 세 문장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많은 의미가 함축된, 거의 이 소설의 주제와도 같은 문장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장편소설입니다. 1905년 '호토토기스'에 발표된 나쓰메 소세키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발표 이후 나쓰메 소세키는 1907년부터 일본 '아사히 신문'의 전속 작가가 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는 영어 교사 구샤미의 집에 사는 고양이 '나'가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 군상, 그러니까 주인 구샤미 선생의 일가와 구샤미의 친구들에 관한 풍자적인 묘사가 주된 내용입니다. 구샤미는 편협한 성격에 위장병을 앓고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로 짐작합니다.
듣자 하니 그 인간이 서생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영악한 종족이라고 한다. // 내 이름은 아직 없지만, 욕심을 내면 한이 없기 때문에 평생 이 교사 집에서 무명의 고양이로 생을 마칠 생각이다.
고양이 '나'는 소설의 시작부터 자신이 앞으로 함께 살게 될 인간 군상에 대해 큰 기대도 없고 불만도 없음을 드러냅니다. 말투나 행동에서 현자 느낌을 주는 고양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허를 찌르는 유머에 두꺼운 책을 읽는동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얼마 전에도 다다미에다 발톱을 좀 갈았더니 안주인이 화를 버럭 내면서 그 후에는 방에 잘 들여놓지도 않았다.
고양이와 살다보면 셀 수 없이 다양한 표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가운데 '그게 뭐가 중요해?', '왜 그걸 그렇게 신경 써?'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의 가짓수가 가장 많습니다. 다다미에 발톱을 갈고, 패브릭 소파를 뜯고, 커튼 끈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고양이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인간들이 그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고양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유를 듣고 보면 보풀이 나서, 보기 흉해져서, 비싼 가구라서 등등 궁색하기 짝이 없기도 합니다.
고양이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하고 운다. // 일기 같은 씨잘 데 없는 것은 절대 쓰지 않는다. 우리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자신의 속내를 풀어놓아야 하겠지만, 고양이족은 굳이 그렇게 성가신 일을 해가며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해야 할 것까지는 없다.
생활이 단순하고 겉과 속이 같은 고양이는 그렇지 못한 인간들이 별로입니다. '일기 같은' 것을 쓰는 집주인 구샤미는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 자신임을 여기서도 슬쩍 흘려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평온함을 얻는다. // 기쁘고 기쁜지고.
고양이 '나'는 어느날 잔에 담긴 맥주를 마시고 항아리 물에 빠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항아리를 빠져나갈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고양이 '나'는 현자답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서도 등장인물들 간에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는 장면에서 이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잠시 등장하는데 출간한 지 1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시들지 않은 유쾌함을 지닌 몇 안 되는 '재미'있는 고전문학작품입니다. 고양이 만세.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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