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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책] 세월 Les Annéesㅣ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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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월 Les Annéesㅣ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의 소설 <세월 Les Années>입니다. 아니 에르노는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구속을 밝혀내는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데 작가의 책을 한 권만 읽어봐도 이 묘사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정확한 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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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월 Les Années>은 작가가 '비인격적 자서전(Collective Autobiography; 사회학적 자서전)'으로 제시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1년에서 2006년까지 60여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회적 사건들, 그것이 자신과 가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면서 집단에 공유된 역사를 엮어냅니다. 일기 형식을 하고 있으나 조금은 독특한 접근방식을 사용하는 이 회고록은 '나'라는 1인칭이 아닌 '그녀'라는 3인칭을 택하면서 저자와 약간의 거리를 둡니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전개됩니다.

 

 

젊은 시절에 대한 회고록에서는 젊음의 숙명적인 오만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녀'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한때 자리잡았던 그 생각을 빈틈없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30대, 40대가 되고, 50대, 60대가 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던 때가 분명 있었으니까요. 그 나잇대는 '내 일'이 결코 아니었던 때가.

 

그녀는 나이를 느끼지 못한다. 분명 젊은 여성으로서 더 나이든 여성을 향한 교만과 폐경기 여성들을 향한 거만함을 품고 있을 것이다. // 그녀는 52세에 죽는다는 예언에도 아무렇지 않으며, 죽기에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특정 연령대에 기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회 초년생을 막 벗어난 그 시기의 어디쯤, 쉽게 주고받는 대화에 종종 등장하는 '자리를 잡고'라는 말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이제 더는 새로울 것이 없으며 자유롭게 무엇이든 꿈꿀 필요도 없는 상태, '자리를 잡고'.

 

35세가 되지 않았던 우리는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늙어가고,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우울해졌다. 폭발하기 직전의 넘쳐 흐르는 그릇으로 상상하던 그곳으로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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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여겼던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시기는 전 세계에 '총결산'과도 같은 대비를 요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0년이 다가왔다. 우리가 그 시대를 알게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전에 죽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2000년 1월 1일, 모두가 설렘과 긴장 속에 맞이했던 다신 없을 세계적인 이벤트를 떠올려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국제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로 붕괴되던 날에 관한 일기입니다. 아니 에르노는 그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었던가를 떠올리며 그 사건이 '너' 또는 '그/그녀'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 15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3,000명의 사람들과 동시에 살아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 우리는 동시대성에 당혹스러워하며 지구상에 사람들이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과 똑같은 불안정함 속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에르노는 <세월>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 그러한 것들이 켜켜이 쌓인 그것이 바로 세월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생토노레레방 온천 공원에 있는 놀이기구, 보부아진느 가의 호텔 방. 산 미켈레 벽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태양... 들을 열거합니다. 

 

모두에겐 구하고 싶은 '시간의 무언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것들은 사는 동안 갖고자 한 부나 명예, 성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이나 쉼의 한 장면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엮여 결국 <세월>이 됩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첫 페이지에 사용된 인용문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렇다. 우리는 잊힐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고 심각해 보이며 버거운 결과로 보이는 것들, 바로 그것들이 잊히는,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_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

 

<세월 Les Années>의 첫 문장으로 사용된 "모든 장면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표현과 맥락이 같습니다. 이 표현은 아니 에르노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될 수도 있으며, 서두에서 '세월'을 정의하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월>의 전부이자 일부를 살아나가는 것이겠지요.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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