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행복의 나락 The Lees of HappinessㅣF.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Fitzgerald, 1896-1940)의 단편 모음집 <행복의 나락 The Lees of Happiness>입니다. '행복'과 '나락', 원서 제목으로는 'Happiness'와 'Lees', 행복에는 자연스럽게 불행이 따른다 혹은 행복에 속한 어떠한 찌꺼기 같은 환멸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난 사람들, 돌이킬 수 없는 추억... 피츠제럴드가 즐겨 다룬 이들 주제가 결국 '행복의 나락'들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1949)가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각별히 애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1925>, 그리고 이 책 <행복의 나락, 1922>은 피츠제럴드가 겨우 20대 중후반에 쓴 작품입니다. 청년의 시기에 '행복의 나락'을 간파한 것은 그의 작가적 재능이기도 하지만 그의 삶에 편만한 잃어감의 과정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난을 이유로 연인에게 버림받고, 20대 초반에 작가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동시에 빚에 허덕이고,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상 어려움을 겪었으며 아내 역시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재기를 위해 마지막 작품을 집필하던 중 44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행복의 나락>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각각의 작품은 모두 '잃어버린 것, 퇴색된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문은 닫혔고, 태양은 지고 없었다. // "오래전에, 내 안에 무언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것들은 사라졌지. 영원히 사라져 버렸어, 이젠 가 버렸어. 올 수가 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더 이상 그건 돌아오지 않아."
_「행복의 나락」 '겨울 꿈' 가운데
도날드는 환승하는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삶의 후반전이란 삶에서 이것저것을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이므로, 그 과정 속에서 이 정도의 경험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_「행복의 나락」 '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 가운데
대부분의 남녀들에게 이 30년(35세-65세)의 세월은 점차 인생에서 물러나는 일로 채워진다. // 두려움과 피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린다.
_「행복의 나락」 '오, 붉은 머리 마녀!' 가운데
여름은 이미 가고 이제는 인디언 서머였다. // 이 둘에게 삶은 너무 빨리 왔다가 가버렸다. 남은 것은 쓰라림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남은 것은 환멸이 아니라 오직 고통이었다. 악수를 하며 서로의 눈에 깃든 친절함을 확인할 때에 이미 달빛은 충분히 밝았다.
_「행복의 나락」 '행복의 나락' 가운데
역사가 반복되듯 좋은 문학도 시대를 따라 계속 소환됩니다. 피츠 제럴드의 <행복의 나락>은 행복과 행복의 나락이 반복되는 인생의 불협화음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2023.1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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