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망각의 기술ㅣ이반 이스키에르도, 뇌 과학 (심심푸른숲)
인간이 살아가는 데 기억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질병인 치매를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이유도 기억이라는 것이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르헨티나계 브라질 과학자인 이반 이스키에르도(Ivan Antonio Izquierdo, 1937)의 <망각의 기술>에서는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르베르트 보비오ㅡ이탈리아 철학자ㅡ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잊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다."
기억이 우리를 정의하듯, 망각(기억 상실) 역시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장치일 수 있다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뇌는 어떤 기억을 망각하기로 결정할 때 단독으로 이 절차를 행한다고 합니다. 자발적으로 망각하는 뇌, 가장 큰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억과 관련한 기제가 포화하지 않도록 적절히 정리한다는 것인데 의식의 동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마지 요즘 SNS 알고리즘의 기능과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일어난 나의 행동들의 결과가 불러온 알고리즘, 역시 '인공'지능(AI)을 앞서는 '실제'지능의 화려한 기술입니다.
망각뿐만 아니라 거짓 기억도 뇌가 단독으로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거짓 기억으로 과거를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가 은밀히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결국 거짓 기억 역시 우리 자신을 나타냅니다.
때로 거짓 기억으로부터 진짜 기억을 추출해 내기가 어렵다. 이것이 우리 주변에 성공적인 거짓말쟁이가 그토록 넘치는 이유다.
<망각의 기술>에서는 '기억의 기술'도 알려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 와 운동!, 공부 중에서는 특히 읽기 영역이 기억력을 돕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슬픔이나 우울은 기억력과는 큰 연관성이 없으며 읽기가 요구되는 일을 오래 한 고령자가 기억력 면에서 더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이반 이스키에르도는 <망각의 기술>에서 '읽기는 거의 모든 뇌 영역과 기억 형태를 사용하고 실행하는 유일한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공부는 햄릿처럼 우물 안에 갇혀 자신을 만물의 왕으로 여기는 사람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한다. 공부는 우리가 알면 이로운 많은 나라, 언어, 문화, 기후, 사물이 있음을 알게 한다... 수많은 연구가 읽기, 학습, 그에 의한 기억의 형석이 중요하다는 사살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_「망각의 기술」 본문 가운데
망각의 기술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 특히 40세가 넘어가면 이 기술이 더욱 탁월해진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교수, 코치, 임원 등 리더의 자리에 40세 이상의 중장년이 앉는 것 역시 망각의 기술을 통해 '큰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 있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세부사항을 버리는 재능은 '큰 일'에 적합한 역량입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보르헤스는 말했다. "그는 푸네스가 사고에는 그리 능숙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고하려면 일반화를 위해 망각해야만 한다."
상황에 대한 일반화를 위해 망각의 기술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인데, 쓸모없는 세부 사항을 버리는(망각) 재능은 이반 이스키에르도의 말처럼 '큰 일'에 적합한 역량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억의 기술, 그리고 망각 역시 살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 뇌에서 일어나는 이 둘 사이의 역학관계가 흥미로우면서도 한편 고맙기까지 합니다. 뭘 기억하고 망각할지 까지 의식의 영역이 해야 한다면 사는 게 쉽지 않을 테니까요.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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