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질문의 책ㅣ에바 수소, 열네 살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우리학교)
얼마 전 동네 화단에 길고양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습니다. 어미 고양이 옆에 꼬물꼬물 새끼들이 모여있습니다. 삐용삐용.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유리벽 안쪽에 새끼를 낳은 똑똑한 어미냥입니다. 다음날은 누가 우산을 갖다 놓고, 앞에 새끼들 먹으라고 불린 사료와 우유도 놔뒀습니다. 어제는 보니 집도 생기고 그 안에 노란색 쿠션도 놓여있습니다. 먹이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먹이 주지 말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습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고맙습니다.
살다 보면 해결되지 않는 철학적 질문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어릴 땐 특히 더 이해 안 되는 상황이 많습니다. 그런 10대들의 질문에 대해 열 명의 철학자가 친절히 답을 내놓는 형식으로 쓰인 책이 있는데 제목은 <질문의 책>, 부제는 '열네 살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입니다. 글은 스웨덴 동화작가 에바 수소(Eva Susso, 1956)가 쓰고 그림은 안나 회글룬드(Anna Hoglund, 1958)가 그렸습니다. 콜라주를 활용한 안나의 독특한 그림체가 '철학 동화'에 찰떡같이 어울립니다.
질문 악은 어디에서 올까? 나는 그 애를 세게 밀쳤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다른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행동은 잘못이지만 그 애는 자업자득이다. 우리의 조롱을 그 애는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게 옳다.
답 선과 악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사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슬픈 진실이다. _해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해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정치 이론가이며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이 악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사유의 불능에 원인이 있다며 그 이면에는 타인과 다르게 생각(행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게 옳다.' 단정적인 이 문장에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이 들어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 모든 사람은 평등할까?.. 쉬는 시간이었는데 그 애는 홀로 서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내가 그 애한테 다가가자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답 다른 사람에게 손님으로 초대받지 못한다면 나는 나의 '집' 말고는 어떤 것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_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이 질문을 한 아이는 아마도 외모나 성격이 조금 다른 친구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놀리고 따돌리는 그 친구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보입니다. "안녕!"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으로 초대받는 일과도 같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거부하거나 사람을 어떠한 범주로 몰아 특정 지으려 할 때 악한 기운을 풀어놓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타자를 진정으로 만날 때 비로소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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