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ㅣ김영하, 단편소설 (문학동네)
산책길에 검은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오른쪽 뒷다리가 불편한 듯 약간 절뚝거립니다.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곧장 반대편 숲길로 들어가길래 '먀오' 소리를 내봤는데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네요. 재도전, '아가야' 불렀더니 멈춰 서서 돌아봅니다. 잠시 쳐다보고 다시 돌아서서 가길래 한번 더 '아가야' 했더니 다시 돌아봅니다. 호박색 눈이 너무 예쁘네요. 아마도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누군가가 그렇게 부르나봅니다. 빈손으로 성가시게 하는 행인에게 더는 속지 않기로 한 듯 돌아서서 총총총 가던 길 갑니다. 귀엽다.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소설 김영하 작가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대해 적어봅니다. 오디오북으로 먼저 들었는데 감정을 가득 실은 발화자와 배경 음악, 효과음 덕분에 드라마 한 편 본 듯한 기분이 든 책입니다. 역시 책은 활자 형태로 읽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운동할 땐 어쩔 수 없지만.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소설의 초입에서부터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 등장합니다.
살다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내겐 오늘이 그랬다.
주인공 정대리는 불운을 수습하고 늦은 출근길에 나섭니다. 이때 고장 나서 서 버린 엘리베이터와 문제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를 마주칩니다. 휴대폰이 없어 119에 신고를 바로 못하고 출근길에 만난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휴대폰을 빌려보려 하지만 족족 실패합니다. '사고도 많고 각박한 세상에 길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휴대폰을 빌려준다?' 라는 생각 자체가 비정한 현대사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하루종일 불운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119에 신고할 시점도 넘기고 맙니다.
정대리의 하루가 얼마나 꼬여대는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생각할 게 아니라 너부터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을 그날 어느 한 시점에 마주친 사람이라면 <정대리는 어떻게 되었나>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 없습니다. 자기만큼 불운한 그 사내에 대한 동병상련일까요. 주인공은 하루가 끝나는 시점까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대해 생각합니다. 처음엔 그가 죽었나? 다쳤나? 걱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하루 종일 머피의 법칙에 시달리고 나서는 그저 호기심으로 바뀝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가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나 잘 해, 너나 잘 살아."
2023.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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