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이틀 만에 또 정전·단수, 비상등 준비ㅣKOICA 해외봉사 콜롬비아 보고타
이틀 만에 다시 전기가 나갔습니다. 오후에 집에서 쉬는데 냉장고와 보안 경보기에서 경고음이 들리더니 와이파이까지 전원이 꺼졌습니다. 비도 안 오는데 이번엔 또 무슨 일인지,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본인도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수전을 올려보니 물은 나오는데 경험상 전기가 나가면 수도도 곧 끊길 듯해서 개수대에 물을 받아놓습니다. 건물 내 다른 입주민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네요. 소파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멍. 집 앞 나무들 중 가운데 나무는 늘 잎이 없이 줄기만 앙상했는데 지금 보니 잎이 풍성해졌네요. 언제 잎이 났을까요.
냉장고에 딱히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라 몇 시간 안에 복구된다면 별 문제 없어보입니다. 전기가 나가면 가장 큰 이슈가 휴대폰입니다. 와이파이가 안 되니 일단 데이터를 구입해서 켜고 집주인과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다행히 배터리 잔량은 한국폰 콜롬비아폰 두 개 다 70% 이상이네요. 집주인이 곧 서비스센터 직원들과 온다고 하니 그동안 뭘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며칠 전 소가모소 선생님이 기름으로 냄비 닦으시던 게 생각나서 저도 기념품으로 산 주전자를 꺼내 닦습니다. 닦닦. 새카맣게 묻어 나오네요.
그다음으로는 여행용 캐리어 두 개를 다 열어젖혀놓고 짐을 정리합니다. 한국에 꼭 가져갈 것들만 추리고 최대한 짐을 줄입니다. 옷장에서도 더는 안 입을 것 같은 옷가지는 꺼내 쓰레기 봉지에 담습니다. 약통도 정리하고 화장품 샘플, 칫솔, 신발 등 버릴만한 것들은 정리합니다. 생각보다 버릴 게 꽤 많네요. 정리를 대충 다 하고 바닥은 물티슈로 한 번 닦아냅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물도 안 나옵니다.
집 앞에 차 여러대와 오토바이까지 와있는 걸 보니 수리기사분들이 오신 듯합니다. 파이팅! 혹시나 몰라 코이카 생존가방에서 비상등으로 쓸만한 플래시를 꺼내놓습니다. 배터리도 3개 동봉돼 있네요. 인덕션레인지라 초가 있어도 불을 켤 수 없으니 어두워지면 플래시라도 켜겠다는 심산입니다.
다시 쇼파에 눕습니다. 코이카(KOICA) 활동보고서 쓰고 있었는데 노트북 전원도 나가고 인터넷도 안 되니 아무것도 할 게 없네요.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탄자니아 Tanzania에 파견 간 동기가 보내준 사진을 넘겨봅니다. 칠흑같이 까만 밤하늘이 이국적입니다. 탄자니아는 수평선도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네요. 콜롬비아와는 또 조금 다른 모양의 야자수도 보입니다. 노을은 어느 나라나 다 아름답네요.
다시 경고음이 여러차례 울리더니 전기가 들어옵니다. 냉장고가 실온상태까지 온도가 올라갔네요. 온도를 다시 세팅하고 휴대폰 와이파이를 켜서 한국에서 온 카톡도 확인합니다. 수전에서 녹물도 콸콸 쏟아집니다. 집주인이 또다시 보고타 Bogotá 시의 후진적인 행정과 낙후한 사회기반시설에 대해 불만을 쏟아놓으며 미안함을 표시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제 한국 갈 때까지 정전과 단수는 없길 바랍니다. ¡Por favor! (부디!)
(시편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Ask of me, and I will make the nations your inheritance, the ends of the earth your possession.
2023.6.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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