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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화 역사 문학 미술

폴 고갱(Paul Gauguin)ㅣ화가의 작품과 생애 (ft.탈인상주의·종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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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Paul Gauguin)ㅣ화가의 작품과 생애 (ft.탈인상주의·종합주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탈인상주의, 종합주의 화가입니다. 폴 고갱은 자유주의 언론인이었던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과 어머니 알린 샤잘 사이에서 1948년 6월 7일 태어났습니다. 고갱은 오를레앙의 리시 잔 다르크 학교를 졸업하고 상선 해병을 위한 도선사로 3년을 일했으며, 이후 프랑스 해군에 입대해 2년간 복무했습니다. 1867년 7월 어머니 알린이 사망했으나 고갱은 누나가 인도까지 와서 알려주기 전까지 몇개월 동안 어머니의 사망 소식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


1871년, 23살의 고갱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증권회사에 취직하게 됩니다. 증권 중개인으로 11년을 근무한 고갱은 당시 현재 원화 기준으로 1억5천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성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고갱은 미술품 거래에서도 많은 돈을 벌었는데, 1882년 34살이던 때 파리 증권시장이 붕괴하면서 증권회사에서 직업을 잃게 되고 그때까지 취미로 그림을 그려오던 고갱은 전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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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은 1873년, 25살에 덴마크 출신 메테 소피가드와 결혼했는데 이후 10년 동안 살명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고갱이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1884년 가족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였고, 생계를 위해 방수포 판매를 했으나 잘 되지않았습니다. 11년간 증권회사를 다니며 넉넉한 생활을 해온 폴 고갱의 가족은 1882년 고갱이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화가가 되기로 하면서 살림이 급격히 기울었던 것입니다. 폴 고갱의 아내는 고갱이 떠날 것을 요구했고, 1885년 고갱은 6살 아들 클로비스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돌아옵니다. 이후 1894년, 폴 고갱이 46세때 아내가 결별을 선언하게 됩니다. 


(좌) 2. 꽃을 든 여인, 1891년 / (우) 3. 해변의 승마, 1902년


폴 고갱의 그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그림을 제대로 배운적도 없고,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닙니다. 고갱이 1871년 파리의 증권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873년,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카미유 피사로와 친분을 맺고 그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1877년에는 파리의 빈곤층이 사는 보지라르 구역에 화실이 딸린 집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1882년 주식시장 붕괴로 고갱이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화가가 되기로 한 다음, 1883년 10월 카미유 피사로에게 자신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으니 도와달라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생활에 점점 여유가 없어지면서 1884년 폴 고갱 아내의 고향인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였고, 이때 자신의 작품과 화구를 코펜하겐으로 보내게 되는데 그중 몇점은 현재까지도 코펜하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좌) 4. 낮잠, 1894년 / (우) 5. 해변의 타히티 여인들, 1891년


 

폴 고갱은 1890년 타히티를 처음 방문하게 됩니다. 목적은 1891년 파리에서 열릴 미술품 경매에 타히티를 소재호 한 작품을 출품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명성을 얻어 큰 수입을 올릴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체의 유럽 문명이 닿지 않은 원시사회로서 타히티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에서 폴 고갱은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위 다섯점의 그림(no.1~5)들은 1890년 타히티 방문 이후 폴 고갱의 화풍입니다. 우리가 흔히 폴 고갱으로 알고 있는 전형적인 그림들입니다. 특히 맨 위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7>의 경우 폴 고갱이 작업을 하면서도 마지막 대작이 될 그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대중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입니다. 


(좌) 6. 브르타뉴의 양치는 소녀, 1886년 / (우) 7. 브르타뉴 소녀, 1886년


아래와 위 네점의 그림(no.6~9)들은 타히티 방문 전, 프랑스에서 작업한 그림들입니다. 폴 고갱만의 특별함도 없고 마치 이 그림 저 그림 흉내내서 그린 듯한 정체성 없는, 폴 고갱의 초기 작품입니다. 화가의 화풍도 시기에 따라 변화를 겪습니다. 폴 고갱은 타히티에서의 경험이 그만의 화풍을 정립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좌) 8. 보지라르 정원, 1881년 / (우) 9. 보지라르의 채소밭, 1879년


폴 고갱의 타히티에서의 약물중독 등 부정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폴 고갱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기 내면에서부터 시작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한 음성을 무시하지 않고 증권회사에서 일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습니다. 화가의 일생은 결국 그의 작품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021.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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