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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제 이슈 외국어

리고베르타 멘추 툼ㅣ1992 노벨평화상, 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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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타 멘추 툼 Rigoberta Menchú Tumㅣ1992 노벨평화상, 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 199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 리고베르타 멘추 툼 (Rigoberta Menchú Tum)

 

ㅣ생몰연대

 

1959년 1월 9일, 과테말라 알데아 치멜(Aldea Chimel, Guatemala) 출생

 

ㅣ수상 이유

 

"for her struggle for social justice and ethno-cultural reconciliation based on respect for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원주민의 권리 존중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와 민족적 문화적 화해를 위해 투쟁한 공로를 인정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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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ú Tum)에 대하여

 

리고베르타 멘추 툼은 1959년 과테말라 원주민이자 마야의 후손인 키체(Kíché) 족 혈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극심한 폭력으로 점철된 나라에서 자라야만 했습니다. 가족 중 여러 명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학살하던 군대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에 1980년대 초 리고베르타 멘추 툼은 멕시코로 망명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인권을 위해 활동하던 유럽 단체들과 접촉하게 됩니다. 리고베르타 멘추 툼은 지속적으로 당국과의 화해 정책을 위해 노력했으며 게릴라 조직 간의 협상에서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와 인종 간 화해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합니다. 마침 1992년은 서방 세계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지 500주년이 되는 것을 기념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6년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그녀는 전 세계 원주민을 위한 유엔 대사 자격을 얻게 됩니다. 1998년에는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자상(Prince of Asturias Awards)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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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의 보도자료(1992.10.16) 일부 인용

 

과테말라는 남미와 중미의 다른 많은 나라들처럼 유럽 이민자의 후손과 토착 원주민 사이에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 갈등은 토착 원주민에 대한 대규모 탄압으로 정점에 달합니다. 이에 리고베르타 멘추 툼은 원주민의 권리 옹호자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빈곤 속에서 자랐으며, 가혹한 탄압과 박해를 겪은 가정에서 자랐으나 리고베르타 원추 툼은 사회 및 정치 활동에서 투쟁의 장기적 목표는 평화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녀는 민족, 문화, 사회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평화와 화해의 생생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리고베르타 멘추 툼(Rigoberta Menchú Tum)의 정치 활동

 

2005년 리고베르타 멘추 툼은 과테말라 연방정부에 합류합니다. 2007년 2월 12일에는 과테말라를 위한 원주민 정당을 결성하고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힙니다. 2007년 대선에서 그녀는 3%의 특표율로 패배하였으나 과테말라 선거에 출마한 최초의 마야족 원주민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9년에는 새로 창당한 정당(Winaq)에 참여하였으며 2011년 다시 대선에 도전합니다. 1차 투표에서 낮은 득표율을 얻어 승리하진 못했으나 위나크(Winaq)는 과테말라 최초의 토착 원주민 정당이 되는 데 성공합니다.

 

 

/참고: The Nobel Prize, Wikipedia, 썸네일 이미지=챗gpt


2024.12.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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