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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설 시 독후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나보코프 단편전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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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나보코프 단편전집」을 읽고


러시아 태생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의 단편 68편을 총망라한 <나보코프 단편전집>입니다.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붕괴되자 서유럽으로 망명합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를 거쳐 1940년 미국에 정착했고 1961년 스위로 이주하여 거기서 생을 마감합니다. 여러 국가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쓴 수많은 단편은 그의 치열한 여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단편전집에는 68편 각각에 대한 짧은 주석과 해설이 수록돼 있습니다. 해설에는 나보코프가 자신의 단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그가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재독하고 함의를 발견하길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단편소설은 대부분 제2의 주요한 이야기가 반투명한 표면 이야기의 내부에 짜여 들어가 있거나 그 뒤에 놓여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이 소설을 읽다가 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_Vladimir Nabo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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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보코프 단편전집>은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입니다. 

 

ㅣ「용」 

 

미숙아로 태어난 겁 많고 별로 영리하지 않은 천년 묵은 용의 생애를 다룬 작품 「용」입니다. 나보코프가 1924년 11월에 집필한 이후 70여년이 지난 1990년 블라디미르 시코르스키 번역으로 프랑스어 번역본에 처음 수록됩니다. 

 

그는 천 년 전쯤 알에서 부화했는데, 이는 다소 느닷없는 탄생ㅡ폭풍우 치는 어느 날 밤, 번쩍하는 벼락을 맞아 거대한 알이 쩍 갈라졌다ㅡ이었다. _「용」 가운데

 

 

바위가 많은 산 속 깊고 어두운 동굴에 은둔하며 살던 용은 별안간 참기 어려운 우울감에 사로잡히고 동굴 밖으로의 모험을 감행합니다. 계곡으로 내려간 용은 달리는 기차를 발견하고 자신과 닮은 외형에 기뻐하지만 기차는 이내 터널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후 마을로 들어간 용은 만취 상태인 담배 회사 사장을 삼켜버리고 본인 역시 취기가 오르고 속이 쓰려 잠이듭니다.

 

용은 본의 아니게 폭음을 한 뒤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용은 극심한 수치심, 난생처음 군중에 둘러싸이게 된 생물이 느끼는 극심한 수줍음에 사로잡혔다. _「용」 가운데

 

한 담배회사 사장을 삼킨 탓에 마을에서 벌어지던 담배회사들 간의 경쟁에 용이 끼어든 겪이 되고, 덕분에 마을에서 벌어진 소동에 휩쓸리고 의도치 않게 큰 덩치로 마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립니다. 

 

 

ㅣ「은총」 

 

서간체로 쓰인 이 작품은 사랑하는 연인을 향한 어느 남자의 음성을 담고 있습니다. 서로 다툰 후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 결국 되돌아오는 남자의 시선입니다. 마침맞게도 이 작품은 1924년 3월에 집필했는데 나보코프가 아내와 처음 만난 게 1923년이고 1925년 4월에 결혼했으니 「은총」은 그 사이에 나온 것이죠. 

 

 

그때 나는 세상의 온유함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깊은 은총을, 나와 모든 피조물 사이의 더없이 행복한 유대를 인식하게 되었어. 그리고 깨달았어. 네 안에서 내가 구하던 기쁨은 네 속에 감춰져 있을 뿐 아니라 내 주위 모든 곳에... 숨 쉬고 있다고. _「은총」 가운데  

 

남자가 집을 나설 땐 화창했던 날씨가 점차 흐려지고 바람이 거세지더니 1시간 후엔 세찬 비까지 내립니다. 그 사이 남자의 주변 풍경과 지나가는 사람들도 바뀌고 생각마저 바뀝니다.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1시간여 사이에 남자는 우리가 하사 받은 선물 같은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2024.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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