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의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를 읽고
70여개의 '이명'으로 많은 글을 쓴 작가,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으로 손꼽히는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시집입니다. 페소아는 그의 수많은 이름들을 단순한 '필명'이 아닌 '이명'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탐구했습니다. 4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페소아는 사후에 더 큰 명성을 얻게 되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 가히 천재 작가로 불릴만합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대표 시선집입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한 페소아이지만 스스로를 늘 시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작품집에는 페르난두 페소아가 가장 사랑한 이명인 알바루 드 캄푸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영영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 무언가가 되기를 원할 수조차 없다. /이걸 제외하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꿈을 품고 있다. (중략)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 타고나지는 않은 사람일 것이고, / 나는 항상 단지 자질은 있었던 사람일 것이며, / 나는 항상 문 없는 벽 앞에서 문 열어주길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하략) _「담배가게」 가운데
이 시에는 시선집의 표제로 사용된 문장이 등장합니다.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고백하자면 저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팬으로 그의 모든 글을 좋아합니다. 이 책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에 수록된 모든 시들이 아름답습니다.
나 홀로, 텅 빈 부두에서, 이 여름 아침에, / 나는 항구 입구를 바라보고, 무한을 바라본다. (중략) 엔지니어인 나, 문명화된 나, 외국에서 교육받은 내가, / 다시 한번 눈앞에 범선과 목선만 보이고, / 옛날 방식 이외의 바다 인생은 몰랐으면 좋겠다! / 오래된 바다들은 절대적인 거리이기에, / 순수히 먼 곳, 현재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이... (하략) _「해상 송시」 가운데
약 100페이지에 달하는 시 「해상 송시」를 한 행씩 읽어내려가다 보면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선을 따라 바다를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아껴두고 읽고 싶은 시집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귀한 시를 발굴해 국내에 소개해준 김한민 작가님께 감사합니다.
2024.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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