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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문화 역사 문학 미술

영국 vs 프랑스 백년전쟁 Hundred Years' Warㅣ원인, 경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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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vs 프랑스 백년전쟁 Hundred Years' Warㅣ원인, 경과, 결과 (ft.잔 다르크)


◆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약 116년간 이어진 영국(잉글랜드)과 프랑스 왕국 간의 분쟁을 일컫습니다. 중세시대 중대한 갈등으로 에드워드 3세(1327-1377)와 필립 6세(1328-1350)가 봉건적 권리를 둘러싼 분쟁을 프랑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로 확대하면서 전쟁이 시작됩니다. 결국 프랑스 왕국이 승리하여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을 지배하게 됩니다. 

 

* 괄호 안은 재위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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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전쟁의 원인

 

백년전쟁의 원인은 매우 복잡합니다. 여러 군주가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전쟁의 동기도 달라졌습니다. 주요 원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필립 6세가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가스코니(Gascony)를 점령한 사건

 

영국 에드워드 3세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자신이 프랑스의 정당한 왕이라고 주장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의 영토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국제무역을 통제하고 귀족들을 위한 전리품과 영지를 획득하기 위한 탐험을 벌임

 

프랑스의 봉건 영토에서 영국인을 제거하려는 프랑스 샤를 5세의 야욕

 

프랑스 샤를 6세의 광기에 빠진 모습과 프랑스 귀족들 사이의 내분으로 인한 정권 불안

 

영국에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정복을 통해 프랑스의 왕이 되려는 영국 헨리 5세의 야망

 

장차 프랑스 왕이 될 샤를 7세의 장자권을 되찾고 프랑스 전체를 통일하려는 도핀(Dauphin)의 결단

 

 

◆ 백년전쟁의 경과

 

처음 영국이 크레시 전투(Crécy, 1346)와 푸아티에 전투(Poitiers, 1356)에서 큰 승리를 거두지만 프랑스의 샤를 5세(1364-1380)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잃었던 땅을 꾸준히 되찾습니다.

 

영국의 리처드 2세(1377-1399)가 프랑스 샤를 6세(1380-1422)의 딸과 결혼하면서 잠시 평화의 시기를 보냅니다.

 

이후 영국의 헨리 5세(1413-1422)가 승리한 아쟁쿠르 전투(Agincourt, 1415)와 함께 전쟁은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잔 다르크(1412-1431)와 같은 인물의 도움으로 프랑스는 포미니(Formigny, 1450)와 카스티용(Castillon, 1453)에서의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최종 승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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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전쟁의 시기 구분

 

전통적으로 백년전쟁은 연구 목적과 양국 간의 중요한 시기의 반영을 위해 다음의 세 단계로 나뉩니다. 

 

ㅣ1기 에드워드 전쟁 The Edwardian War (1337-1360)

영국의 에드워드 3세 재위 이후의 시기

 

ㅣ2기 캐롤라인 전쟁 The Caroline War (1369-1389)

프랑스 샤를 5세 재위 이후의 시기

 

ㅣ3기 랭카스터 전쟁 The Lancastrian War (1415-1453)

영국 왕실 랭카스터 가문 이후의 시기

 

◆ 전쟁과 평화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은 프랑스와 영국 군주 간의 갈등이었습니다. 1337년에 시작되어 1453년에야 비로소 종식되었지만 그 기간 전투가 계속되지는 않았으며 오랜 기간의 평화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전쟁에 사용하는 명칭 '백년전쟁(Hundred Years' War)'은 19세기에야 만들어졌습니다. 

 

 

◆ 백년전쟁의 결과

 

1453년 카스티용 전투(Castillon)에서 영국이 패배하고 영국이 프랑스에서의 영토를 손실하며 백년전쟁은 종전됩니다. 영국이 전쟁에서 패하자 영국의 귀족들은 군주와 그의 통치권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 장미전쟁(1455-1487)으로 알려진 왕조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프랑스 내에서는 영국인에 대한 증오의식이 싹트면서 프랑스인이라는 국민감정이 자리를 잡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교회는 더욱 국가적인 성격(national character) 띠게 되고 두 나라에서 공히 왕정이 강화되고 중앙집권 체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모두 봉건 기사의 세력이 무너지고 농노 해방의 진전, 부르주아 계급의 대두 등을 초래합니다.

오랜 전쟁은 중세 시대 군사전략과 무기개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잔 다르크와 헨리 5세 같은 영웅들이 탄생하여 노래와 중세 문학, 예술로 기념되는데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각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국가적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 국가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양국 국민은 자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훨씬 더 강하게 갖게 됩니다. 

 

/참고: World History Encyclopedia, Wikipedia


2023.1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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