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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국제 이슈 외국어

독일 드레스덴 폭격 Bombing of Dresdenㅣ제2차 세계대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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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드레스덴 폭격 Bombing of Dresdenㅣ제2차 세계대전 역사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1922-2007)의 책을 읽다가 드레스덴 폭격(Bombing of Dresden)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졌습니다. 독일 여러 지역을 다녀봤지만 드레스덴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도시는 없다고 여겨질 만큼 개인적으로 드레스덴에 한눈에 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었으며 잔해들을 모아 오랜 시간 복구한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러려니 했는데, 역시 생존자의 증언 기록만큼 강력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Dresde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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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제5도살장, Slaughter-Five>

 

저자인 커트 보니것(Kurt Vonnegu)이 폭격 당시 드레스덴에 미군 포로로 잡혀 다른 100여 명의 포로들과 도살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당시 기억을 토대로 쓴 소설입니다. 도살장 아래 깊은 지하실에 고기 저장고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몸을 피해 생존할 수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1976년 소설의 특별 서문에서 보니것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전쟁의 철저한 파괴성과 무의미함을 비꼬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비싸고 치밀하게 계획된 드레스덴 잔학 행위는 너무나 무의미하여 마침내 지구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입니다. 나는 이 책을 썼으며 그로 인해 많은 돈과 명성을 얻었습니다." 

 

◆ 드레스덴 폭격(Bombing of Dresden) 개관

 

날짜

 

1945년 2월 13일~15일, 밤

 

위치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Dresden, state of Saxony)

 

대립구도

 

연합군 vs 나치 독일,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의 승리로 결정 난 상황에서 연합군이 드레스덴을 폭격함

 

공격형태

 

3일간 4번의 폭격, 영국(722대)과 미국(527대)의 폭격기가 3,900톤 이상의 고폭탄 및 소이탄* 투하 

(* 영국이 개발한 무기로 첫 폭발 후 오랫동안 파괴력을 지속. 소이탄은 1980년 UN의 특정재래식 무기협약으로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됨)

 

피해규모

 

민간인 최대 2만 5천 명 사망(전체 10만 명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음)

 

◆ 폭격 직후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고 건물의 90%가 파괴되어 엘베강의 피렌체로 불리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은 폭격으로 잿더미로 변합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카펫이 깔리듯 폭탄이 쏟아졌다 해서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Semperoper,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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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과 화해

 

전쟁이 끝나고 독일이 통일된 이후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 젬퍼로퍼(Semperoper, 오페라 극장), 츠빙거 궁전(Zwinger)과 같은 드레스덴의 랜드 마크를 재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1993년 설립된 영국의 자선단체 드레스덴 트러스트(Dresden Trust)가 재건 기금을 마련합니다. 프라우엔 교회는 3D 기술을 사용하여 오래된 사진과 모든 잔해 분석 등을 통해 7년에 걸쳐 재건됩니다. 

 

Frauenkirche, pixabay

 

◆ 전후 논쟁

 

드레스덴 폭격은 이를 둘러싼 도덕적, 군사적 정당성에 대해 역사가와 학자들이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당시 독일 교통망을 파괴하려는 의도였다는 연합군의 공식 입장에도 불구하고 벌지전투(Battle of the Bulge, 1944-1945)에 대한 보복성 민간인 학살 등 전략폭격의 의도와 실효성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참고: Wikipedia


2023.8.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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