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대계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oris Pasternak, 1890-1960)의 대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입니다. 1955년 완성 후 1957년 출간된 작품으로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65년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의사이자 시인인 주인공 유리(유라) 지바고의 청년시절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시대적 배경은 러시아 혁명 전후인 1905년부터 1929년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어있어 1988년까지 금서로 지정됐으며 같은 이유로 노벨문학상 메달 역시 작가 사후인 1989년 아들이 대신 받습니다.
이처럼 사연 많은 <닥터 지바고>이지만 오늘날까지도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이자 위대한 고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주요 인물만 20여 명이 넘는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소설급의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의 척박하고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연인의 애틋한 사랑과 격동의 시대 이념에 희생되는 개인의 꿈과 자유, 지식인의 정신적 고독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설은 이제 겨우 열 살 난 유리 지바고의 어머니 장례식으로 시작됩니다. 이 장면은 어린 나이에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받아 들게 된 지바고의 이후 인생관을 암시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무덤 꼭대기에 선 채 고개를 들어 9월의 끝자락, 황량한 가을 벌판과 수도원의 둥근 지붕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이내 얼굴을 두 손에 묻은 채 소리 내어 훌쩍였다. (p22)
대부호인 지바고의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가족을 버리고 시베리아를 두루 다니며 방탕한 생활과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합니다. 고아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된 유리 지바고는 무질서와 생의 수수께끼 속에서 줄곧 바뀌는 타인의 집을 전전하게 됩니다.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유리 지바고는 토냐와 결혼하고 제1차 대전에 참전한 뒤 잠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러시아 혁명 후 우랄의 바르이키노로 이주합니다. 어느 날 내전 중이던 적군에 군의로 납치되고 몇 년 후 탈출해 우랄의 유리아틴에서 라라와 재회합니다.
그가 글을 쓸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개인과 사회의 삶에 대한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새삼스럽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p528)
격랑의 시대를 오롯이 살아낸 유리 지바고는 생애 마지막 8-9년 동안은 차츰 쇠약해져 글도 쓰지 못하고 의사로서의 지식과 기능도 잃어버린 채 우울과 침체의 늪에 빠져 지냅니다. 한 인간의 험난하고도 화려했던 생은 <닥터 지바고> 전반에 걸쳐 흐르는 처연한 감정으로 수렴됩니다.
전체 17장으로 구성된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17장은 시인이기도 한 유리 지바고의 시 25편을 실어놓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을」이라는 시를 일부 옮겨봅니다.
나는 가족을 떠나보냈다 /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흩어진 지 오래 / 마음과 자연은 / 늘 그렇듯 고독으로 가득 차 있다 // 그대는 ㅡ파멸로 가는 길의 축복이다 / 살아있는 것이 질병보다 힘겨울 때의 / 하지만 미의 본질은ㅡ 용기, _「가을」 中
어머니를 떠나보낸 달이기도 한 9월을 배경으로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을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고독으로 가득 찬 마음과 자연이라는 시구가 동양철학적 메타포로 다가오네요.
2025.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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