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우연의 모습을 하고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예상할 수 없는 우연, 이 책의 한국어판 표제를 한참 들여다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Ending(2011)>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Julian Patrick Barnes, 1946-)가 여든이 가까워지는 만년에 쓴 소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2024)>입니다. 작품의 원서 제목은 'Elizabeth Finch'로 소설에 등장하는 한 교수의 이름을 표제로 쓰고 있습니다.
소설은 인생에서 여러 실패를 경험한 한 남자가 삶에 영감을 주는 교수 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나 다양한 분야의 강렬한 질문들을 받아 들고 그것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출판사 소개문에서는 <우연을 비켜가지 않는다>에 대해 줄리언 반스의 40년 문학의 결정판이자 문학적 지문과도 같은 작품이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메모도 책도 초조함도 없이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미소를 짓더니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p11)
소설의 첫 문장에서 교단에 서있는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의 여유로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재야의 고수와도 같은 에너지를 풍기는 핀치 교수가 어떤 가르침을 전해줄지 기대가 됩니다.
"잊지 마세요. 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세요." (p23)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닐'은 핀치 교수를 세상은 이미 버린 이전 시대의 진리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실이 과연 믿을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적합한 인물인 것이죠.
핀치 교수의 말은 '닐'의 경험칙에도 잘 들어맞습니다.
죽은 자는 우리에게 우리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살아 있는 자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죽은 자를 더 신뢰한다. 이게 괴상한가, 아니면 분별력이 있는 건가? (p43)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에서 핀치 교수와 주인공 닐은 같은 인식수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더 신뢰한다는 말은 곧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한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무엇보다 분별력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닌가?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보다 지고 나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하고 싶네요." (p58)
핀치 교수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 넘길 수 없는 깊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배교자가 진실한 신자나 거룩한 순교자보다 흥미롭다는 아슬아슬한 발언도 덧붙입니다. 그들의 생생한 의심이 활동적인 지성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288)
오랜 친구나 부모 형제가 우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지나가던 모르는 이가 갑자기 숨겨진 진실을 눈치채기도 합니다. 배경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객관적인 시각 덕분이겠지요.
과연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이며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것에서 관계의 불협화음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 중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의 수첩에 쓰인 짧은 글귀를 옮겨 적어봅니다.
공격의 한 형태로서의 연민, 연민을 주의하라. 정말로. (p118)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연민을 주의하라...!!!
2025.7.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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