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설 시 독후감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728x90
반응형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선물 받은 지 꽤 오래된 책인데 책장에 꽂아둔 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읽을 시기가 된 듯합니다. 

 

전문 방송작가이자 소설가인 조남주 작가가 2016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입니다. 마치 읽었다는 착각이 들만큼 유명한 소설인데 곳곳에서 보이던 홍보문구 덕분이겠지요. 이 책의 주인공은 표제 그대로 한국에서 나고 자란 1982년생 김지영 씨입니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하던 1982년, 그리고 그 당시 흔하디 흔한 이름인 '지영'을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태어나서 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한 후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하고, 시댁과 갈등하고... 이렇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그 나이 또래의 아주 평범한 한 여성의 생애를 담은 소설이 바로 <82년생 김지영>이기 때문입니다. 

 

반응형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5년 가을을 첫 무대로 쓰고 있습니다. 그다음은 과거로 돌아가 1982년부터 10여 년의 이야기, 그다음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의 이야기, 그다음은 2001년부터 또 10여 년의 이야기, 그렇게 마지막장은 2016년의 김지영 씨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김지영 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이기도 했는데, 모두 김지영 씨 주변의 여자였다. 정말, 감쪽같이, 완벽하게, 그 사람이 되었다. (p165) 「2016년」 가운데

 

소설이 이러한 전개를 거치는 이유는 <82년생 김지영>의 화자가 김지영 씨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며, 이 소설이 그녀의 진료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산후우울증이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져 때때로 해리장애 증상을 보이는 김지영 씨는 2016년 현재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사돈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 집 삼 남매도 명절 아니면 다 같이 얼굴 볼 시간 없어요.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셔야죠." 결국 정대현 씨가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끌고 나갔다. (p18)「2015년 가을」 가운데

 

김지영 씨가 2015년의 어느 날 명절에 시댁에서 해리장애 증상을 보인 날의 일화입니다. 친정어머니로 정체성이 변한 김지영 씨의 말은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아주 흔하던 일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28x90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아버지, (남)동생, 할머니 순서로 퍼 담는 것이 당연했고, 모양이 온전한 두부와 만두와 동그랑땡이 동생 입에 들어가는 동안 언니와 김지영 씨가 부서진 조각들을 먹는 것이 당연했고... 정부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칠 때였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 (p25-29)「1982년~1994년」 가운데

 

1982년생 김지영 씨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불합리한 일들은 지금으로선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입니다. 대한민국 남아선호사상의 시발점이 어디인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지점 어디쯤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땅 어디엔가 김지영 씨가 살고 있을까요. 살고 있겠지요. 어쩌면 셀 수조차 없이 많은 김지영 씨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2025년인데도 말이죠. 

 

아주 쉽게 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페미니즘 문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사회 전반의 의식과 정서의 원류를 더듬어 올라가며 충실하게 묘사한 기록 문학으로 봐도 좋을 듯합니다. 


2025.2. 씀.


 

728x90
반응형